본문 바로가기

내 인생 최고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2007)

  이 영화 이름처럼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영화는 많지 않다. 엔딩 크레딧이 나올 때, 즉 시계 소리만 똑딱똑딱 거렸던 그 순간까지 많은 이들은 제목에 대한 의심의 존재만 가득하다. 확실한 것은 감상 전에 하는 오해, 즉 '궁극적으로 이 영화의 제목이 내용을 통해 무엇을 설명하냐는 것인가' 하는 생각들 정도는 해소 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내내 깊히 긴장 속에 삼켜져 심장이 굳어버린 듯할 심정이 일어난다는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의 하루는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강이 되어버린다. 흐린 구름과 노을 아래 거대한 자연과 시간은 이 상황이 우습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 들고야 만다. 우연히 발견한 쑥대밭이 된 마약 거래 현장 속에서 돈가방을 쥐게 된 남자가 있다. 그리고 단지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손으로 사건을 종지부찍으려는 살인마와 이 두 사람의 추격전과 그 사건의 행방과 경황을 쫓는 한 노쇠한 보안관이 있다. 그 중 하비예르 바르뎀의 안톤 쉬거는 절대적으로 미스테릭한 인물이다. 이유는 단순하지만 이 사태를 정상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게 있어서는 말도 안될 뿐이다. 
 이미 수 많은 세월을 겪어본 노쇠한 보안관은 가까울 듯이, 멀어보이는 사건을 스스로 종결시킬만한 힘이 없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에 대해 그저 한숨만 내 쉴 뿐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코멕 멕카시의 스릴러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코엔 형제의 기록적 작품이다. 2008년 당시 수 많은 수상을 거머쥔 이 영화는 지금까지의 코엔 형제 작품 중 (대부분이 뛰어났지만) 완성도가 놀라울만치 뛰어나고 섬세한 단계까지 이뤄낸 시대의 명작으로 표현된다. 비슷한 느낌의 전개 방식으로는 영화 <파고>가 있었다. 그러나 <파고>는 스크러블 코미디와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만큼 전개의 플롯이 진지한 부분이 다소 떨어지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는 어쩐지 동 떨어진 비평이 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코엔 형제가 지금까지 만들어 왔던 작품 중 <위대한 레보스키>와 <파고> 등을 비롯해 흥미로운 캐릭터들의 영화의 흥미요소가 되었다면 이 작품은 거기와 더불어 풍겨지는 "특별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엄청난 카리스마"가 내포되어있다. 그 것은 미루어 짐작해보건데, 수 많은 긴장의 순간의 반복일지도 모른다. 거의 소설과 대등한 구성 방식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살인마와 도망자를 주 시점으로 전개되며, 거리감으로도 이미 느껴질 정도의 거리에서 보안관의 이야기가 그 뒤에서 열심히 쫓으려고 고군분투 중인 것을 볼 수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음악 한 점 등장하지 않고 끝내 비정하게도 시계 소리로 끝을 장식한다. 소리가 나오지 않을 만큼 넓은 황야 속까지 울려 퍼지는 총소음은 더욱 거대하고 긴장되며 혹은 안톤이 들고 다니는 이상할 정도로 보이는 무기를 통해 나오는 기체의 순간 압력이 소리 없이 희생자의 살을 뚫어 나오는 장면 역시 압도적이다. 

 도망자인 르롤린은 그가 살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훔친 돈을 주면서까지 수 많은 물건을 산다. 사용한 돈이 문제는 아니지만, 결국 '그는 왜 예상할 수 있는 미래 속에서 그는 맥주에 손을 댔는가'라는 원초적 질문을 해야 하는 문제에 있다. 그리고 마지막, 안톤의 행동이 눈에 띈다. 차를 멈출수도 있었지만 그가 멈추지 않았다는 것. 실수일 가능성이 그겠지만서도 그는 그렇게 큰 사고를 당하고선, 돈을 줄테니 나를 모른척 하라고 소년이 입고 있는 셔츠로 자신의 팔을 감싸 도망친다. 문제는 그런 중요한 순간이 어느 선택이었을까를 되새기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어려운 문제다.
 결과적으로는 단 인간 인생에서 단 한 순간의 선택이 수 많은 굴절이 발생하는 결과가 생기지만 그 것을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겪어 온 노인에게 감당할 수 없을 이야기가 된 것이라고, 나름대로 그럴 듯 하게 정리할 수는 있지만 사실 말로 설명하자는 것보다 더 어려운 문제다. 그 상황에 대해 무덤덤히 바라보는 노인의 입장에서는 어떨 지 그 누구도 공감하고 그 심정을 대여할 수 없다. 이미 시간은 알수 없을 정도로 흘러가고, 모든 젊은 사람들은 자신보다 앞서 나가고 어쨌든 삶을 즐겨 나가고 있다. 돈이 수단과 활력 요소의 역할로 이용하는 사람도 있고, 그저 마음 편한 것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아주 가까운 곳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노인은 다르다. 그리고 이젠 아버지보다 더 늙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이미 나이상으로 자신보다는 젊은, 계속 그 자리에서 같은 나이로 존재하는 그 아버지는 자신보다 훨씬 빠르다. 그리고 자신은 어느새 돌아가신 아버지보다 나이를 먹어 진정한 노인이 된 것을 깨닫고 세상을 바꾸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