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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Dr. Strangelove :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1964)

 스탠리 큐브릭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를 통해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끊임 없이 나아가는 테크놀러지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96분의 짧막한 이야기로 관객과 함께 비웃게 만들었다. 컬러 시대의 흑백으로 만들어진 이 블랙 코미디의 원작은 <적색 경보>로, 영국에서는 <멸망까지 두 시간>이라는 제목의 매우 심각하고 진지한 소설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익히 알려져있다. 다만 큐브릭은 원작에 비해서도 조금 더 유연하면서도 심도있는 서스펜스 코미디로 변환시켜 활용시켰다는 게 원작과의 차이점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한 공군 부대 장군의 터무니 없는 망상에서 시작된다. 그는 '소련 녀석들은 항상 물을 마시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가 모르게 체액에 이상이 있는 물질을 첨가해서 이미 우리를 공격하고 있을 것이다.'라며 전시 때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작전 R을 내리고 외부 접촉과 관련된 모든 장비는 수거하고, 기지를 봉쇄시키도록 명령시킨다. '작전 R'은 심각한 전시 때에서만 사용하는 기밀 작전으로 40메가 톤급 핵을 목표 지점에서 투하하는 명령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 작전 R에서 발생하는 오류가 그가 권력을 남용해버린 사태가 되어버린 셈이다. 그리고 그의 교환 장교인 영국 공군 장교 라이오넬 맨드레이크가 그 상황 속에서 장군을 설득해보려하지만 거의 반쯤은, 패닉 상태가 되어버리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되어버린다. 한편, 미국 전쟁 상황실은 이 심각한 상황을 두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모책하던 과정 중 머킨 머플리 대통령은 소련 대사를 소환하여 이 상황을 오직 전화로서 해결하며 진땀을 흘리면서 정신 이상자가 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박사의 조언만 듣느라 바쁘다. 마지막으로, 해당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책임자 T. J. "킹" 콩 소령은 오히려 비장하지만 느긋한 모습이 보인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연출력과 구성 배우의 연기 이 삼박자의 최고조다. 그 중 이 영화에 출연한 모든 배우들은 절대로 빈틈 없을 수준의 연기력을 구사한다. 라이오넬 맨드레이크와 머킨 머플리, 그리고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라는 세 명의 캐릭터를 1인 3역으로 연기한 피터 셀러스의 공은 최고로 평가되는데, 그는 전혀 다른 3명의 캐릭터를 전혀 다른 색깔로 (그 자신만의 공통점을 제외한) 익살스러운 연기력이 있다. 군 기지에 연락을 해야하는데, 지금 통신이 되는건 공중 전화밖에 없고, 잔돈이 없으니 저기 있는 코카 콜라 자판기에 총 쏴 부셔 동전을 달라며 초조해하는 맨드레이크, 소련 서기관과 통화 속에 "당신은 유감이지만 나도 역시 유감이오, 그러므로 우리 둘다 유감이오."라며 역시 초조해하는 머플리 대통령, 그리고 마지막 자기도 모르게 정신이 나가 나치 경례를 하려고 하는 말 안듣는 한 손을 저지하는 맛이 가버린 박사,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를 흐트러짐 없이 깔끔하게 소화해버린다. 충격적인 한 방을 먹여준 스탈링 헤이든도, 그리고 실제로 넘어져버려 NG를 내버렸지만 그게 오히려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꼼꼼한 큐브릭마저도 인정한, 조지 C. 스캇의 연기력도 생각이 난다. 그들의 대화는 더 이상 제 정신을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닌 것 같을 정도. 정치적인 위치만큼은 꼭대기에 존재한 사람들이, 자기 자신들이 만들었던 시스템의 과오와 그를 벗어날 수 없는 책임은 이미 알려진대로 스탠리 큐브릭이 보여주고자 하는 혐오 그 자체다. 물론 코미디로써 끝나버리는 짧은 이야기는 정신차리라는 메시지보다는 한 층 더 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스탠리 큐브릭은 이러한 장르의 유용성과 현실적으로 큰 문제를 고발하는 방법의 차이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 박사의 마지막 언행은 관객에게 웃음보다도 그 자체의 징그러운 사람의 정신 상태의 혐오를 비웃음과 혼합시킨 유일무이한 기괴한 '연기'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라는 이 초유의 정치적 블랙 코미디는 당시 시대의 이데올로기의 풍자와 그 현실감의 재구성, 그리고 국민들이 바라보는 그 "핵폭탄"이라는 단어의 현실성을 얼마나 깨닫고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묻고 있다. 물론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기에 이 정도의 결정력이 존재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나서야 대단하다고 박수를 치고 싶을 마음이 생기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위험하지 않은, 세계를 뒤집을만한 그 어떤 폭탄'같은 작품처럼 여겨질 것이 충분할 것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스탠리 큐브릭의 필모그래피에 있어서도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지만 지금 시대에서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범 잡을 수 없는 귀중한 역사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