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82)

 리들리 스콧은 자신의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세계를 관객들에게 최대한 잘 설명하고 싶어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의 첫 미국 데뷔작인 <블레이드 러너>는 당시 흥행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후에 작품성면에서 대단한 명성을 끼친 덕분에 1992년에는 Director's Cut이 재개봉하였으며 2007년에 Final Cut이 개봉되었다. 오리지날에 비해 더욱 완성도 있게 만들고 싶어했는지, 리들리 스콧은 디렉터스 컷과 파이널 컷은 색채 및 장면적 편집을 통해 변화를 주었다.
 '퓨쳐 누아르' 혹은 '테크 누아르'라 불리우는 <블레이드 러너>는 2019년의 미래 세계를 그린 SF영화로, 주인공은 불법으로 탈주한 레플리컨트, 즉 인조인간을 체포 혹은 사살하라는 지시를 받으며 펼쳐지는 이야기로, 필립 K. 딕의 소설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을 원작으로 각색하여 만들어졌다. 전개는 서스펜스의 장르를 많이 따왔으며 인물간의 상황도 많이 열려있다. 그러기에 이해하는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보통 이 시대의 미래는 매우 아득하게 그려지거나 후에 갈수록 미래에 가깝지 않은 그런 현실로 묘사가 되기도 한다. 리들리 스콧은 중국과 일본의 배경으로 아시아의 복잡한 시장을 지상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많은 영화에서는 완전하게 초월적인 세상이 아니라면 추악하고 개체의 포화로 현실의 복잡한 세상 그대로를 본 따 미래의 세상까지 입혀 그려버린다. 이 영화는 후자에 비춰진다. 동시에 리들리 스콧은 고전의 습관과 신세계의 배경을 누아르에 잘 적용시켰는데 그 누구나 어두운 세상의 스릴러에 애착을 갖는 관객에게 새로운 시각의 분할을 겪게 해줄 뿐이다.
 이 영화의 완성도는 질적으로 매우 높다. 수 많은 SF영화의 문제점은 동기 부여가 호기심에 그치기 때문에 실제로 재미가 없었다면 박대당하며 반대로 이 작품처럼 인정을 받게 되는 경우라면, 작품성에 의존하다보니 이는 심오해야하며 빈틈이 없어야할 뿐더러 장르적인 재미도 고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이 영화는 기존 누아르 스릴러의 촬영 방식을 선호하였으며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미래 속의 건물의 양식은 높이에 비례한 듯, 그 육중한 모습과는 반대로, 인간들이 숨 쉬는 지상은 미래보다는 현대에 가까운, 실상은 곧 영화에서 등장하는 레플리컨트의 절규와 아주 잘 맞아 떨어진다. 이는 테크놀러지의 모순일 뿐이다. 왠지 인간은 <블레이드 러너>의 세계 속에서 너무나도 동 떨어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이 가짜인 것처럼 말이다.

 


 <블레이드 러너>의 세계에서 등장하는 로봇. 레플리컨트들은 겉모습이 인간과 완전히 똑같도록 그려져 있으며 소설이나 다른 SF영화 속의 일반적인 안드로이드의 체계를 무너뜨려버렸다. 특히 영화 속의 레플리컨트들은 스스로를 시한부의 인간으로 받아들이며 치명적 고뇌에 빠진다. 그러나 이들은 인간이 견딜 수 없는 범위의 온도를 견디는 등 로봇의 가장 특출난 기능을 발휘한다. 그만큼 매우 난폭하고 파괴적인 성격의 로봇. 하지만 로봇이지만 총에는 죽을 정도다. 영화 속에서 총을 맞은 레플리컨트들의 모습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최후의 악역은 룻거 하우어가 연기했다. 가장 강하고 광기적인 로봇 캐릭터로 자신을 만든 창조주를 '아버지'라 부르며 스스로 절멸시켜 버리는 장면과 해리슨 포드를 추격하는 모습에서 보여주는 행동은 더 이상 그는 로봇이 아닐 뿐인 수준. 이 이상 말로 형용할 수 없으리라. 어떤 면에서 보면 이 영화의 주제는 룻거 하우어에게 달려있다. 해리슨 포드는 그 열쇠일 뿐이다. "4년 밖에 살지 못하는 로봇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며 달려들며 스스로에게 애걸복걸하는 듯한 자는 그 어느 존재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의 미래는 전반적으로 현실과는 다른 로봇 공학이 먼저 발전한 미래의 모습이다. 창조된 신인류는 인간에 가깝지 않도록 말한다. 아무리 인간에 가까워도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이 영화는 결말까지 이것을 말한다. 크게 인상깊은 이미지가 그래봤자 종이 유니콘이었지만 오히려 중간 마다 등장하는 유니콘의 상징과 더불어 영화 자체의 스릴러의 전개성에 기반으로 한 스토리로 돌아와 적당히 맺음을 하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무참하게도 초기판에서는 그 결말마저 배드 엔딩으로 담담하게 종결되었지만.
 
 리들리 스콧은 이 컬트 영화를 수 차례 이 영화를 편집하면서까지 작품에 대한 애착이 드러나보인다. 그는 어떻게 해야 관객들에게 이 메시지를 잘 전달시킬 수 있을지 여전히 고민한다. 두 번 생각하게 되었을 때 이 영화는 그들이 찾는 것처럼 감성적이고 철학적인 생각이 많이 차지하게 된다. 당황스럽게도 이 영화는 의도된 것과 다르게 재미의 성분이 많이 떨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도 이 영화가 최소한 액션이 풍부한 SF 영화 쯤으로 기대하며 접한 사람들이 꽤 있었나보다. 볼 거리로 하자면 생각보다 다양하고 아방가르드한 부분도 많았지만. 재미있게도 이 영화에서는 일본에 관한 견제가 심해보인다. 당시에는 에니메이션이고 영화고 정말 대단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