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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억과 상실의 영화관 (메모리즈, 아이들은 잠시 외출했을 뿐이다 外 3편)

시네마 상상마당에 가게 될 기회가 생겨서 기분 좋게 다섯편의 영화를 감상하고 나왔다. 사실 뭐 내가 상황, 환경, 기분에 따라 영화에 대한 입맛이 달라질까 걱정했지만 이 날은 의외로 참 좋았다.
 그러나 친구를 기다리는 바람에 제대로 못 보게 된 존 윌리엄스의<겨울잠>은 꼭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끝 부분이 상당히 강한 묘미를 남겼다. 우연이었을 것이다. 한산하고 차가운 방 속에서 영사기가 돌아가고, 곰의 탈을 쓴 어린 아이가 하는 말은 무슨 말이었을지 정말 궁금했다는 것밖에는 말하기 그렇다. 정말 아쉽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본 영화중 가장 짧았던 <메모리즈>였다. 여자는 과거나 지금이나 때론 눈이 오는 꿈을 꾼다. 그리고 나무에 기대서, 남자에게 자신은 겨울이 좋다며 봄이 오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고, 남자는 가볍게 여자의 기분을 들어준다. 그리고 둘은 갈길을 향해 걸어가고 카메라는 둘을 쫓다가 다시 되돌아가 과거를 비춰준다. 그 곳은 영화 자유 부인의 한 장면이었다. 몇 십년이 지나도 그 기분은 존속했으면 좋겠다만, 그게 힘든게 시간의 위력인가보다. 어쨌든 당시 이 장면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한편으로는 과거의 연인이 세상이 많은 변할 것을 조심스레, 낭만적으로 예상하지만 이미 과거를 보지 못한 나에게는 왠지 되돌아 싶은 값진 추억같았다. 가끔 나는 아주 어렸을 적을 생각한다. 엄마 손을 꼭 잡고, 그녀가 "어야 가자"고 했을 때 구경하는 값진 기억. 그때는 호기심 많은 강아지처럼 킁킁 거렸을 것이다. 확실히 지금은 새로운 것을 접했을 때 느낀, 그런 비슷한 냄새조차 나지 않는 것 같다.

 이미 푸짐할 정도로 쌓여있는 눈은 주인공을 멈추게 하고 눈물흘리게 만든다. <멍키러브>는 원숭이 복장을 한 사람이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사실 이 영화는 잘 모르겠다. 카메라는 계속 돌아가고 관찰하듯 주인공을 쳐다보지만 왜 그리 슬픈지. 몇 번이라도 더 볼 의향은 있지만 갈수록 그 슬픔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단지 그가 잃어버린 사랑을 쫓는 것을 지켜본다고만 느낀다면 폭발할 수도 있다.

 <꿈속에서>는 우리 나라 작품이고, 고등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우리 나라 남자들에게 가장 친숙할만하다. 사실, 이 때가 가장 친구와 가까울 때일 것이라고 느낀다. 거기에 더불어,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에는 무감각하지만 친한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을 견디기에는 너무 벅차다. 영화가 그리 긴박한 느낌이 아닌데도 친한 친구가 죽었을 때 겪는 불편한 마음을 매우 효과적으로 말해주었다. 영화는 한 시간을 기점으로 되돌아 가는 가장 평범하지만 제일 특별했고 잊혀지지 않을만한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겨우 꿈틀거리는 고양이를 보았을 때, 가까히 하고 싶지만 주저함을 느끼는 것은 믿겨지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 지금까지 대부분이 작품이 슬픔을 보여줬다면 <아이들은 잠시 외출했을 뿐이다>는 현실의 동화처럼 다소 차갑고 공포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어린 아이들의 외로운 모습을 말해준다. 그러니까, 나는 자꾸 그 자리에 있지만 사람들은 우리의 존재를 잊어버렸고 시간이 흐름을 겪게해줬다. 10살 정도되는 어린 여자 아이들이 때 아닌 옷을 입고 한 발자국씩 길을 걸어갔지만 이미 이 곳의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반응은 어른보다 더 바람직했다. 아쉽고 슬프지만 침착하고 순수해보였다. 그게 이 영화의 힘이다. 주인공의 모든 행동과 눈길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 주제만큼 모든 영화가 슬펐고 감동적이었다. 세상에는 좋은 영화가 너무 많다.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겪게 해준 이 영화속 감독들에게 감사와 찬사를 표한다. 아, 그리고 이건 비평이 아니다. 난 이미 배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