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멜키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세번의 장례식 (The Three Burials Of Melquiades Estrada, 2005)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또한 비슷한 느낌이다. 다만 항상 그 곳에서 노인은 존재했지만 파뿌리같이 세월을 한 줌 더 가다듬는 에드 톰 벨과는 다르지만 그러나 이 역시 노인이다. 지금보다 3년 전의 캐릭터이지만 지금보다 훨씬 과격하기도 하고 수염 관리도 안해 지저분해보이는 피트가 바로 토미 리 존스이다.
 2005년에 선보인 <멜키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세번의 장례식>는 배우 토미 리 존스가 두 번째로 감독을 맡은 작품이다. 그가 감독 실력에 일가견이 있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기보다는, 오히려 7대 째 텍사스 토박이에게는 남다르지 않게 편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었다.
 그 후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에드 톰 벨이나 이 영화 속 자신이 맡은 인물 피트와 구분이 안갈 정도로 비슷하거나 관련성이 있다. 굳이 신경 쓸 필요 따위는 없지만, 왜 말을 이리 아끼는 배우는 항상 텍사스와 멕시코를 배경으로 고생을 하나 모르겠다는 생각 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들의 취향이 원로 배우들에 대한 애착이 깊다. 그 중 한 명이 토미 리 존스이다. 난 항상 과묵하면서도 할 일을 꼭 빼먹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다양한 영화 속에서 흥미롭게 감상했다.
 이 영화의 내용은 피트의 친한 친구 멜키아데스 에스트라다 라는 이름의 멕시코 사내가 한 국경 수비대의 일원의 실수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된다. 피트와 멜키아데스가 만난 시간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피트는 항상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도 멜키아데스가 쓸쓸해 하는 모습을 많이 관찰할 수 있었다. 가장 친한 사람이 죽었을 때라면 누구나 느낄지도 모른다. 피트는 죽기 전 멜키아데스가 한 말을 뚜렷히 기억을 한다. 그리고 멜키아데스의 빈 말같았던 유언을 늙은 자신이 그 부탁을 들어주기 시작한다.
 마치, 먼 길을 떠나가는 모습을 보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와 비슷한 기분이 든다. 역시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기억은 흐릿하다. 어쨌든 '막연하다'는 기분이었는데 그래도 끝은 보이긴 했다.
 텍사스는 참 조용하다. 총 구멍을 통해 한 번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지면 다시 돌아올 정도로 외롭고 돌아오는 소리가 조용해지면 밤이나 낮이나 다를게 없을 정도로 조용하다.
 이렇게 말하면 억측일지도 모르겠지만 훗날 이 영화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떠올리게 할 수도 있지는 않을까 싶다. 아들을 떠나보내 힘을 잃은 장님 노인, 그리고 자신보다 젊은 친구가 죽어 더 나이 먹은 자가 어린 사람을 추모해야하는 노인을 보면 그렇다고 느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장면 자체에서 농담으로 받아 들이지만, 이 할아버지가 의외로 인상이 깊다


 어떤 이야기는 친구가 죽임을 당했을 때 복수를 하려 잡아 들겠지만 피트는 그걸 원하지 않았다. 사실은, 실수로 멜키아데스를 죽인 마이크 노튼이 정말 실수로 죽였다는 사실을 알아서 그럴 수 있다지만 딱 보기에도 피트는 그렇게 할 일 없는 사람 또한 아니다. 몇 몇 장면들로 하여금 마이클 노튼을 이해하지 않도록 심정을 발산시켜 누구나 '저 자식은 나쁜 새끼이다'하며 그가 어떻게 될지에 인상 깊게 지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어쨌든 피트는 마이크 노튼에게 한 방을 먹이기는 한다. 그리고 멜키아데스 에스트라다가 원하는 묫자리를 가는 것은 슬프지만 한편 따뜻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마지막에 멜키아데스의 생전 모습이 다시 떠오르게 하는 사진은 정말 인상 깊다. 결말이 그렇게 진부하지도, 폭발적이지도 그렇다고 그저 슬프지만은 않은 작품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