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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영화

배니싱 포인트 (Vanishing Point,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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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한참 타란티노의 작품에 열광하고 있을 시절 내가 그의 작품을 보며 신경을 썼던 것 중에 하나는 작품 속에 등장한 배우들의 대사였는데, <데스 프루프>에는 커트 러셀과 트레이시 톰스 그리고 '실제' 스턴트 우먼 조이 벨이 배니싱 포인트에 대한 이야기를 마구 퍼붓 가운데 이 영화를 우회적으로 언급한다. <데스 프루프>에 나왔던 차가 바로 이 영화에서 나왔던 자동차다.

 <배니싱 포인트>는 1971년에 만들었던 영화 치고 매우 뛰어난 수작에는 틀림이 없었을 뿐더러 그 속에 출연하는 또 다른 주인공인 닷지 챌린저가 경찰들을 무시하고 거침없이 질주하는 장면은 요즘 영화에서 보는 CG보다 훨씬 매력있고 박진감 넘쳤다. 하지만 시속 136km를 육박하는 무서운 속도로 끝없이 달리는 주인공의 모습을 비추어보았을 때 박진감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배니싱 포인트는 액션 영화가 아니니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제임스 "지미" 코왈스키로, 자동차 배달부이다. 코왈스키는 콜도라도의 덴버 주에 있는 '아르고의 자동차 배달 서비스'에서 1970년 닷지 챌린저를 샌 프란시스코로 옮기는 일을 맡는다. 그는 옛날 베트남 전에 출전한 군인이었고 경찰로서 근무를 하기도 하였고, 카 레이서, 심지어 모터사이클 레이서를 하기도 하였다는 것이 영화 속에서 등장한다. 그에게 무언가 부족한게 있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속도를 즐기기 위한 아드레날린 중독자였는지, 정확한 내막을 알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분명히, 코왈스키는 무언가를 잃고 찾는 중이었을 것이다.
 닷지 챌린저를 타고 질주하는 일이 그게 그의 마지막 일이었다. 그의 친구이자 라디오 쟈키인 '슈퍼 소울'은 코왈스키의 처지를 잘 아나보다. 홀로 자동차를 타고 달려가는 그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이라곤 마이크를 통해 '우리들의 마지막 영웅'이라고 외쳐주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코왈스키가 거침없이 달리는데 경찰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경찰들은 도망자처럼 여기는 코왈스키를 쫓지만 역부족이었다. 차를 세우라고 해도 그의 대답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황야 속으로 가르기 이전까지는 경찰들의 행동들도 한 몫을 한다. 영화 속에서 경찰들이 그를 쫓는 와중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약간의 힌트들이 등장한다.
 그는 무작정 달려야 한다는 의지 때문에, 웬만한 사람들이 갈 수 없는 모래 폭풍 속으로 들어간다. 그 칼날 바람속에서도 한 마디 이야기는 커녕 혼잣말도 없이 달린다. 가끔씩은 차를 세우고 잠깐 동안 사색에 잠겨있기도 하지만 그가 운전을 하기 위해서 운전을 하고, 그가 하는 행동에 있어 어떤 목적도 없을 뿐이다.

 이런 면에서 그의 이유없는 질주가 '잃어버린 여자 때문이다' 라든가 '아드레날린 중독자이다' 또는 '직업에 대해 미련이 있다'등 알 수 없는 그의 모습에 대해 가설들만 난무시키는 가운데 배니싱 포인트를 피상적으로 보기엔 의미 없는 영화로 오해받을 수도 있는 영화 같다. '그냥 달리다가 끝나네, 쿠엔틴 타란티노가 데스 프루프 만들 때 배니싱 포인트를 생각하면서 만들었다며? 그럼 그냥 데스 프루프처럼 쾅! 부딧치는 장면나오고 비슷하겠구나, 하지만 고전작이라는 맛으로 보는건가'라고 하는 것이 젊은 층들의 생각일수도..

 그러나 배니싱 포인트의 제목을 생각하면서 보면 '소실점'의 뜻을 가진 이 영화에 대해 약간은 쓸쓸한 무게를 짊어 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마치 영화 폭풍속으로 처럼 마지막에 그 도망가야 할 친구가 자기가 그냥 '하고 싶어서' 서핑을 하는 것과 똑같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