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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영화

스트레인저 댄 픽션 (Stranger Than Fiction, 2006)

 소설 속의 '해설'은 작가가 독자에게 이끌고자 하는 이야기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소설의 가독성은 해설의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런 관계로 이 영화는 '만약 주인공이 하는 모든 행동이 소설이면 어떨까'에서 시작한다. 주인공의 모든 행동이 소설이라는 것이다. 주인공의 일상을 기반으로 설명되는 모든 행동과 성격은 매우 정형적이다. 이 사람은 국세청 직원이며, 그의 직업을 바탕으로 인생은 어느 순간부터 숫자와 암기로 가득차 있는 것 같다. 나레이션은 이 영화 속의 주인공의 일상을 간략하게 설명하는데 어느 순간 이 해설이 작품 외부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내부에 존재함으로써 주인공 본인이 들을 수 있게 된다.

인생의 낙이 없이 소소하게 그는 매 하루를 시작하지만 어느 날, 자신의 일상을 말하는 해설자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순간 그는 매우 혼란스러워한다. 재미있게도, 아주 작은 행동부터 그는 평소의 행동 패턴을 조금만이라도 벗어나면 해설을 들리지 않는다. 앞서 말했 듯이, 이 남자는 모든 행동을 정확한 궤도 속에 살고 있었던 것이고, 마치 강박증에 걸린 환자처럼 조금이라도 일정한 패털에서 벗어나면 그것은 그의 인생이 아닌 것이 된다. 왜 하필이면 이 단순한 사람이 주인공인지는 모두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변화는 가장 큰 사건이다. 하지만 그가 자기 자신을 깰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이다. 해설자가 말하기 시작한 것을 알게된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알려고 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그의 인생이 소설이라는 장점 덕분에, 한 여자를 만나게 되고 자신의 목적을 알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코미디가 아니다. 나는 왜 이 영화가 포털에서 코미디 장르에 포함되어 있는지 인정할 수가 없다. 윌 페렐의 코미디 전문 배우라서? 이 영화가 마크 포스터의 작품이라는 것만 봐야할 것이다. 그 것을 알았다고 해도 이 영화를 마크 포스터 한정의 작품관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다만 마크 포스터의 연출 능력은 상당히 뛰어난데, 이 영화 속의 CG와 장면 연출은 매우 설득력있다. 어떤 영화는 심장을 두근두근할 정도로 불안하게 만들어주지만, 감히 말해 <트루먼쇼> 처럼 잔잔하게 슬프면서도 행복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비록 근접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본 다음, 원작 소설을 읽게 된다면 글자 하나 하나가 설명하는 표현은 이미 영화 속에서 본 장면을 재현시켜준다. <스트레인저 댄 픽션> 속은 해설이 함께한다. 다행히 모든 장면이 해설로 가득하지 않다. 무언가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존재할 뿐이다. 단지 이 거대한 기둥같은 규칙 덕분에 이 영화가 매우 흥미로워질 수 있었던 것이고, 작가는 이 세계의 신이라는 것이다. 가장 잘 만들어진 이야기가 현실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