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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영화

레퀴엠 (Requiem For a Dream, 2000)

  이 영화를 통해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중독에 의한 환각적 영상을 우리가 알고 싶은 만큼에 한도해서 보여주려고는 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된다. 영화 평론가이자 대학 교수인 미켈 J.코벤은 <레퀴엠>이대니 보일의 <트레인스포팅>이나 스파이크 리의 영화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은 작품이라고 평가했으며 대런 아로노프스키 자체의 스타일과 영화 속 주제를 매우 주관적인 포착을 품었다고 했다. <파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던 대로 이 <레퀴엠> 역시 놀라운 영화다. 혹자는 "이처럼 우울한 영화"는 많지 않다고 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레퀴엠>은 서로 가까운 4명의 인물이 직 간접적인 영향으로 인하여 마약에 중독되어 스스로 붕괴되는 과정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무서운 영화다. 어떤 시각에서 보면 이 영화는 매우 우울한 영화이며, 더불어 매우 무섭고 잔인한 영화다. <레퀴엠>의 전개는 4명의 주인공의 시점으로 밖에 이야기가 드러내지 않아 매우 주관적인 시점으로 그들이 약물에 중독되는 것을 보여주는데 살을 빼기 위한 노년의 여성, 이제는 어머니를 실망시키지 않겠다며 마약으로 돈을 벌려는 남자,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어린 시절 자신의 어머니의 품이 보이기 시작한 친구, 자신의 공허한 존재감을 알아주며 마약을 시작한 그의 여자친구까지. 각자의 개인적 성격은 매우 다르며 찾고 싶어하는 욕망의 근원 조차 다를 뿐이지만 무너지는 것은 똑같다. 조금 더 멋지고 싶거나 자기 존재에 대한 순수한 결정을 찾기 위했던 것 뿐이다.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이렇게 죽은 자들에 대한 애도를 이 영화로 표현했다. 이 영화는 그 어떤 정신적인 영화보다도 매우 현실적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사람의 마음마저 어지럽혀놓는 대단한 영화다. 지금까지 수 차례 사용해왔지만 그 주제와 가장 맞는 영특한 영상 기법, 사운드트랙은 심리적인 충격이 반복되며, 배우들의 연기력에는 역시 욕망과 광기 그리고 절망이 존재한다.
 이 영화는 마치 관객에게까지 마약에 젖게 만들도록 체험해보는 것처럼 보는 자들을 악몽 속으로 빠뜨린다. 반복되는 흡입의 순간, 꿈을 체험하고 이 순간마저도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동시 다발적인 몽타쥬로 보여준다. 이들은 자신의 세계 속에서 스스로 빠지는 도취감은 모두 약물 중독에서 오는 것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에게 현실은 고통이 되어버리고 다시 그것들을 찾으면서 똑같은 쾌감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육체의 쾌감은 잊혀지기 마련이며 다시 찾고 싶어하는 욕망 속에 빠져버린다. <레퀴엠>에서 등장하는 4명의 인물의 원인은 바로 꿈처럼 잘되고 싶어서라는 아주 사소하지만 단 하나의 소망이었다. 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후회하는 순간을 잃어버린다. 그저 그냥 한 번 더 그 꿈을 꾸게 해달라는 것일 뿐. 붕괴되는 순간부터 수 많은 단어를 떠오르게 만드는 착잡한 심정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