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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레이저헤드 (Eraserhead, 1977)

 이 작품에 대한 나의 해석도 보통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첫 번째 해석은 그렇다. 낙태? 부성? 알 수 없을 노릇이다. 감독인 데이빗 린치는 이 영화에 대한 그러한 해석을 부정하려 드는 것 같다. 주인공이라는 녀석은 금방이라도 번개를 맞은 헤어 스타일에 대답을 못하며 우왕좌왕하는 태도이며, 그의 여자친구는 도망을 간 데다가 이 곳 저곳에서는 이상한 장면들이 난무한다. 주변 소리는 내가 우주 속에 있는 느낌이고, 주먹만한 닭 요리에서는 피가 흐른다.
 어쨌든 이 영화가 초기에 나왔을 때 인기를 얻는데는 소수 팬들만이 존재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데이빗 린치의 장편 데뷔작이다. 그는 이 영화를 찍는데만 5년이 걸렸다. 이 영화의 각본이 20장밖에 되지 않았기에 미국 영화 연구소의 지원을 받지 못해서도 그랬다고 한다. 결국 3년 뒤에 지원을 받아 만들긴 했지만, 모든 관객들은 갸우뚱한다.
 이 영화에 대한 가장 공통적인 해석은 '악몽'이라는 단어로 논점을 둔다. 그리고 데이빗 린치도 이 영화를 "가장 영적인 영화"라고 언급한 이유가 있기에 거기에서 뒷받침이 될 것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볼 때는 초점이 대단히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인물의 행동이 눈에 띄지 않은 느낌이다. 중간 마다 등장하는 몇 몇 장면들을 제외하고는 행동의 집중이 되지 않는다. 화면 연출에 문제도 있었겠지만 당연히 저 시대에는 화질이 좋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앞의 말 처럼 돈이 없어서? 그건 아닐 것이다. 이 영화는 과거의 연출 방법을 사용했다. 어찌 보면 무성 영화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장면들이다. 정말 난해한 문제는 이 영화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악몽인지도 모른다. 맘 편하게 생각하자면 영화 전체를 악몽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중간에 주인공인 헨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도 존재하는 듯 싶다. 그 사이에 도출되는 공포적 장치들은 무시하기 힘들 정도다.
 영화 속 주인공 헨리는 여자 친구와 함께 성관계를 맺었나보다. 이미 그녀의 부모도 알고 있더라. 그녀의 엄마는 자기 딸을 성적으로 좋아하고, 아빠는 이상하게 웃는 표정으로 일관하고. 영화에서 그들은 아기를 미숙아로 판단한다. 헨리와 여자친구 메리의 아기는 매우 혐오스럽게 생겼다. 만약 이 아기가 괴물이었을 때 생긴 그대로 처럼 괴물의 행동을 보였다면 덜 무서웠을 수도 있었다. 분명히 당연한 모습인데, 왜 이 아기가 무서울까? 새 생명이 이렇게 망가진 상태로 태어나서 그 자체만으로 족한건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메리는 아기를 버리고 집에는 헨리와 아기만이 남았다. 아기가 아파하면 헨리는 아기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느샌가 헨리의 아기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더욱 매력적인 옆집의 여자와 관계를 맺는다. 많은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될 즈음에 헨리마저 지우개 머리가 된다. 그리고 다시 누군가로 부터 머리가 재생하고 다시 일어났을 때에는 그는 다시 헨리로 되어있다. 다시 깨어났을 때에도 그는 다시 악몽 속에 존재한다. 비로소 자신의 불편한 욕구를 직접 파괴해서야 그는 천국 속에 존재함을 느낀다.
 이 작품이 일으킨 기류를 통해 '현상'자체의 기여는 컬트 영화라는 점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영화 자체만으로 봤을 때, 이 영화는 내용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해석은 데이빗 린치가 좋아하지 않는 반응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영화 비평이 크게 신뢰할 수 없는 이유가 직결된다. 그런데도, 비평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것도 팬들의 문제는 아닌가 싶다. 그러나 영화라는 컨텐츠가 어떤 논설처럼 확실한 답이 없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