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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영화

시체들의 새벽 (Dawn of the Dead, 1978)

  요 몇년 전부터 좀비 영화의 비약적인 진화가 있었다. 최근 작품들은 영화 속 인물들이 처한 노출 상황과 컴플렉스였는데, 더군다나 요즘은 좀비들이 먹잇감의 냄새를 맡으며 가만히 서있다가도 먹이를 향해 침흘리며 돌진하는 쇼트 등으로 비추어보건데, 영화가 심리적인 딜레마보다도 저 썩어가는 고기덩어리를 어떻게 분쇄시킬지에 대한 묘사가 더욱 치밀하면서도 외적으로는 단순할 정도이다. 이런 면에서는 오히려 옛날에 스플래터의 묘미와 액션 활극 오락의 퓨전성이라고 생각이 된다.


 긴급 상황을 끝까지 알려야하는 방송국은 위기로부터 가장 오래 머물러야 하는 마지막 장소다. 이야기는 그 곳에서 시작된다. 생존자들은 대부분 이 곳도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하나 둘씩 새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기 시작한다. 주인공 일행은 헬기를 타고 백화점으로 도망친다. 일단 백화점에는 없는 게 없고 식량 또한 충분하기 때문에 버티는데에는 최적의 장소이지만 그만큼 약탈이 심할 장소 중 하나였다. 당시 백화점을 두고 내용을 전개하는 것은 정말 막연할 듯 했지만 조지 로메로는 천재적인 힘을 발휘하였다. 요즘에도 잘 다루는 양념 요소인 근친 살상이나 도망을 하는 것은 이 영화의 주요 소재가 아니다. 영화는 사람들의 바보같은 모습을 잘 다룬다. 백화점에 있을 때에는 모든 것을 가진 것 마냥 기쁨에 젖어있다. 사람은 아무도 없고, 아무도 없으므로 그 곳은 그들이 주인인 셈이다.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방심을 하게 되고, 서로는 갈등을 한다.
 인간이 죽어서도 가장 차가운 존재가 되었을 때에도 이미 기본적인 욕망는 식욕이다. <시체들의 새벽>은 인간 실태에 대한 갸우뚱하게 만들 정도의 교묘한 비판을 말해주고 있는 듯 싶다. 리메이크 작인 <새벽의 저주>를 보면 알듯이 그들은 가장 오래 버틸 수 있다는 명분으로 차지하게 되는 곳을 대형 슈퍼 마켓을 지목한다. 모두가 도망치고 아무도 없는 이 거대한 장소에서 문 잠그고 보물이 가득한 섬 속에서 나뒹굴며 논다. '나뒹군다'는 표현은 조금 경솔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렇다는 것이다. 원작이나 리메이크 작이나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은 평범한 인간이 보여주는 소비적인 행태를 부릴 수 있을 정도의 가장 합리적이면서도 극단적인 상황을 미리 깔아 놓은 뒤, 좀비라는 아주 완전 무결한 존재를 대입시키면 이 영화는 거의 이중적인 도발성의 섬뜩한 코미디에 가깝다.

 조지 로메로의 시체 시리즈 중 2편인 <시체들의 새벽>은 시체 시리즈의 1편인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후 10년만에 등장한 작품으로 흑백으로 이루어진 전작에 비해 테크니컬러가 무색할 정도로 특수 효과가 다소 엉망에 가깝게 설정되어 있다. 조지 로메로가 일부러 더 재미를 주기 위해 당시 특수 분장사인 톰 사비니에게 주문한 내용대로지만 실제로 보기에는 익살스럽기까지 할 정도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거의 모든 만연한 불안감을 둘러싼 좀비 영화의 근원인 이 작품들 (나머지 시리즈까지 포함해서)은, 아마도 당시 사회 모습에 대한 심리적인 풍자와 조롱이 가득하다. 마침내 지금 이 시점에 이 영화를 언급하기한 너무나도 낡고 해진 헝겊같지만 역사 속의 최고의 작품 중 하나라를 것은 여전히 부정할 수 없을 정도.

우리가 어느새 좀비라는 변화된 신 인류에 익숙해질 때 쯤에는 이미 뛰어난 지능을 가진 인간들이 새로운 공간과 세계를 꾸미게 될 것이다. <시체들의 새벽>에서는 그 공간을 대형 마켓이라는 설정을 두고 동시에 약탈되는 과정까지 보여준다. 이처럼 조지 로메로는 우리가 아무래도 세상이 바뀌는 때에 보여주는 비극이나 현상에 대해 만화처럼 묘사할 줄 아는 천부적인 재능을 입증시킨다.

언제 한 번은 다른 사이트에서 이 작품에 대해 본 적이 있었는데 그야말로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작품이라는 기분이었다. 그 당시에는 이 영화의 리메이크 작인 새벽의 저주의 덕분에 나처럼 젊은 사람들에게는 좀비 영화가 친숙해졌기에 더욱 예전 빛을 바랄 법했지만 공교롭게도 리메이크 작이 워낙 파격적이라 요즘 세대들은 썩 재미있지 않게 받아들여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