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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영화

저수지의 개들 (Reservoir Dogs, 1992)

 원래 내가 타란티노를 좋아하게 된 작품이 <킬빌>과 <펄프 픽션>이었으나 <저수지의 개들>도 그 작품들 못지 않게 뿅가게 만든 영화였다. 기본적으로는 <저수지의 개들>은 타란티노의 수 많은 시행과 착오로 인한 궁극의 데뷔작이었지만 결론적으로 그를 아는데 있어 초반에는 <펄프 픽션>과 <킬빌>이 나를 그의 팬으로 만든 결정적인 작품이긴 하였다. 하지만 이 영화는 지금 다시 보면 정말 기가 막히고 고전 영화같은 달콤한 맛의 기분을 한 참 배우기엔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먼저 이 영화를 보고 진심으로 재밌다고 하는 사람들은 <아스팔트 정글>이나 <킬링> 등 케이퍼 필름의 팬일 가능성이 높다. 뭐 이 영화를 먼저 보고 나중에 고전작을 봐도 역시 아름다운 건 보장이 가능하다.



 타란티노는 비선형식 스토리라인을 만드는 것이 주특기이며 이에 대해 대가라고 해도 손색이없다. 이 영화 뿐만 아니라 <펄프 픽션> 또한 그랬고 <킬빌>과 <재키 브라운>마저 비선형 방식을 채택했다. 재키 브라운은 개인적으로 타란티노 영화 중에서 의외로 유난히 지루한 작품이었다. 사후 장면이 먼저 등장하면 당연히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지고, 기다렸다는 듯 과거 이야기를 설명해주는 방식은 평소에 보던 일직선적인 구성보다 더욱 재미있다. 보통은 비선형적인 구조는 관객들을 혼란시키기 쉽지만 타란티노는 정말 깔끔하게 구분 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저수지의 개들>에서 등장하는 배우들은 지금 소식이 뜸하지만 적어도 2000년 이전에는 유명한 배우가 많이 등장했다. 하비 케이틀이나 스티브 부세미, 그리고 지금까지도 유명한 마이클 매드슨이 이 영화의 주연들이었고 나 역시 그들을 지지하는 열혈팬이다. 특히 미스터 블론드 역을 맡은 마이클 매드슨의 연기가 기가 막혔는데 포박한 경찰 내쉬에게 휘발유를 뿌리고 음악은 흥겹게 나오는 라디오 소리에 맞춰 혓바닥을 잘라버리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이 너무 유명해서 <심슨 가족>에서 패러디까지 했다. <심슨 가족>에서 톰과 제리를 패러디한 이치와 스크래치 속에 등장한 저수지의 개들은 타란티노가 캐릭터가 등장했는데 여기서 이치는 아무렇지도 않게 타란티노를 참수시켜버린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성공한 이유는 아이디어보다도 고전식 누아르의 매력과 범죄 영화로서의 스타일, 그리고 타란티노만의 영화 감각의 훌륭한 조화였다고 생각한다. 범죄 장르면으로 보자면 존 휴스턴의 <아스팔트 정글>의 1950년을 시작으로, 지금을 배경으로 한 탕 노리는 오션스 일당들까지 케이퍼 필름은 대부분 범죄를 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이 주를 이루고 계획을 성공하는 장면까지 거듭해서 요리를 완성하는데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내용과 별 상관 없는 수다로 시작해서 누군가는 총에 맞고 동료는 함께 살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창고로 피신하는 장면으로 파격적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서로 생존 의식을 통해 인물들이 가진 성격의 지배성이 뛰어났다. 동료애를 가진 미스터 화이트, 상황의 심각성은 무시한 채 광기적 성격을 가진 미스터 블론드, 정신 없이 살기 바쁜 미스터 핑크. 그리고 나머지 멤버들 조차 몇 장면 나오지 않고 죽게된다.

  영화는 창고로 피신한 한 명이 추가로 등장함과 더불어 머지 않아 사건의 경황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총에 맞아 쓰러진 사내와 그를 보호하고 있는 동료들은 과다출혈 때문에 그의 죽음이 멀지 않았다고 직감한다. 그리고 몇 명은 추가로 일단 모이기 시작하는데, 쥐새끼가 한 마리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혼란 속에서 개들은 저수지에 갇혀있다.

  의외로 이 영화가 결정적으로 반전이 그 주제라고하기에는 설득력이나 카타르시즘도 빈약하고 특히 그 부분이 크게 충격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따로 찾아볼 수 있는 몇 몇의 눈에 띄는 장면들이 시선을 자극하는데 그 것이 사실 누아르의 매력이었다. 저수지의 개들은 암흑가의 환상에 찬물을 끼얹어줌과 동시에 장면 하나 하나에서 영화적인 즐거움에서 힘이 있다. 의외로 타란티노가 추구하는 제작 스타일을 보면 누구나도 비추어지는 열린 환경 속에서 심정이나 행동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재미를 선사하고자 노력한다. 실제로 <데쓰 프루프>에서도 타란티노는 원래 살인마의 입장에서 그들을 추격하는 또 다른 독특한 영화 스타일을 보여주고 싶었으나 그렇게 되면 슬래셔 무비로서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긴장감이 위축되기 때문에 이를 포기하고 다소 뚜렷하지 않은 살인마의 동기와 옥의 티를 만들어 결말 이외의 깔끔한 면은 존재하지 않고 타란티노 그 다운 영화가 제작되어버리고 말았다. 이와 같이 열린 상황을 보여주는 그의 영화는 <재키 브라운>에서도 등장한다.

 영화에서, 처음 시작 장면이 영화의 전체적인 몰입도의 영향을 어느 정도 끼친다는 점을 통해 관객이 영화를 얼마나 재미있게 바라본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비추어봤을 때 '라이크 어 버진'으로 시작하는 일상같고 별 의미없는 수다와 함께 막을 올리니 관계 없는 내용이 더욱 더 눈길을 끈다. 대화가 끝나면 시작되는 70년대 음악은 정말 귀를 자극하듯 달콤하다. 그 때라도 보기 드물던 인물 소개는 유치하기는 커녕 정말 아름답고 한번씩 조명되는 인물 하나 하나의 포커스가 멋지다. 그리고 그들은 한 시대를 주름잡던 거물들처럼 뒷모습으로 그들이 저수지의 개들이라는 것을 대표한다.

 나는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묘한 이끌림을 당한다. 언젠가는 묘연하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면 소름이 끼친다. 그 것이 바로 타란티노의 힘이 아닌가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