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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노라 (Anora, 2024)

내가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았을 때 "한 여성이 돈 많은 남자를 만나 도망치는 러브스토리"는 아닐까 오해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영화의 스토리에서 주인공의 상황은 그것보다 더 열악했고 말그대로 "대환장파티"였다. 스트립바에서 일하는 "애니"의 이야기이다. 옷을 벗어던지며 스트립 댄스를 하며 돈을 버는 그녀는 수 많은 손님들을 거쳐가며 "일"을 한다. 그리고 잠시 밥을 먹다 그녀는 매니저의 요청으로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손님을 접대한다. 영화 내내 그녀는 내키지 않은 표정을 볼 수 있다. 어려보이는 러시아인 고객은 개인적으로 그녀를 부르며 수천, 수만 달러의 돈을 내면서 1주일간 여자친구 대행을 부탁하고 라스베이거스에 가 결혼까지 한다. 그녀의 인생은 이제 폈나 싶었지만 그녀가 처한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이 영화는 어느 성노동자의 신분적인 인생 역전과 그로 인한 해프닝을 그린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텐저린>과 달리 영화는 그리 밝은 분위기로 흘러가지 않는데 캐릭터들의 연속성과 행동, 그리고 상황의 문제로 스토리를 코믹하게 흐르게 만든다. 내가 느꼈을 때 영화가 주는 영상적인 메시지보다 로드무비의 형태를 가지고 복잡한 상황 속에서의 끝없는 언쟁과 욕설, 복잡한 행동들은 표면적으로 봤을 때 성노동자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공감을 찾기란 어렵고 단지 "애니"라는 캐릭터의 개인적인 스토리에 더 초점이 가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션 베이커는 이영화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시 원래 인생으로 돌아가는 듯한 행위를 하는 애니와 상황에 따른 그녀의 표정은 꽤 잘 묻어있다. 이것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차이점들은 아마 국가나 문화의 정서적 차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생각은 든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수 있는 부분은 마이키 매드슨의 연기다. <원스 어폰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그녀는 맨슨 패밀리에 소속한 광신도를 연기했는데, 악한 캐릭터의 악랄한 행동은 영화에서 통쾌한 결말까지 연결시키는데 아주 크게 도움을 줬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기억에 남았다.

내가 이 영화를 괜찮다고 느꼈던 이유 중 하나는 어림잡아 1-2주 되는 기간의 휘황찬란한 스토리를 속도감있게 흐르게 만든 전개였다. 그리고 영화의 낮밤 시간대가 왔다갔다 거리는데 밤, 클럽 내의 장면들에서 처리된 조명과 색감은 내용의 분위기와 다르게 아름다웠다. 전반적으로 영화는 차가운 색감으로 표현되었는데 도망친 남편을 찾으며 추운 겨울 바다를 거니는 장면이나, 애니의 주된 생활을 보여주는 장면들 역시 미국의 차가운 밤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려고 애쓰지 않았나 

생각된다. 반면 바냐 (남주인공)의 집안에서 이뤄지는 섹스 씬들은 어두웠던 바냐의 일터가 아닌 (굳이 말하자면)  인생 역전을 하는 밝은 조명의 형태에서 그러졌지만 사실 그녀가 하는 행위의 차이는 다른게 없다는 점이다.

 캐릭터 각각의 행동이나 대화, 마약, 섹스, 술, 범죄 등에 대한 이야기들은 70,80년대 범죄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는데 아마 이런 특징들 때문에 이성적으로는 조금 공감이 되지 않는 답답한 상황들이나 캐릭터들의 행동들이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개인적으로, 70,80년대 범죄 영화를 지금 세대가 보면 다소 논리적으로 합리적이지 않는 이야기들이 많지만 다만 이 영화는 동시대의 배경으로 하였기 때문에 공감이 안되는 부분은 없다. 애니는 자신이 처한 인생의 시점에서 돈은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 애니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더 보여줬다면 괜찮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는데 만약에 그랬다면 영화는 생각보다 훨씬 지루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적당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