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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영화

곡성 (The Wailing, 2016)

 때로는 세간의 주목받을만한 뜨거운 논쟁의 작품이 등장할 때는 세상은 이전보다 더 떠들썩해지는 것 같다. 물론 70년대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이렇게 지금처럼 쉽게 영화를 평하고 논쟁할 수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그리고 풍부하고 영화 커뮤니티는 몰론이고 유투브에서까지 영화에 대한 전문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시대여서 텍스트의 의미는 무색해지는 것 같다. 내가 처음부터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작년에 이 <곡성>을 극장에서 보고 나서 들었던 생각이 최근에 다시 보게된 시점에서까지 은은하게 지속되어져왔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이 영화는 극장 개봉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 했던 작품이었다. 내용도 파격적이고 사람들을 혼란시키는 장치도 무수했다. 물론 이 영화가 보여주는 내용이 파격적이라는 것은 같은 장르적 성격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보편적인 설명일 수도 있다. 오컬트는 오래된 호러 서브장르 중 하나이고 단지 국내에서 개봉해서 성공할 수 있는 영화들 중에 오컬트가 정말 드문 것 뿐이다. 나홍진도 이 서브 장르에 대해서 오래동안 관심을 많이 가졌던 것 같기도 했던 것 같다. 아무튼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은 모양인데, 대중에게는 이 탐탁치 않은 주제와 장면적인 성격이 적응하기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주변의 반응에도 '찝찝하다'가 대부분이었다. 사람들은 영화가 끝나면 늘 마지막 장면을 먼저 기억한 다음 기억할수 있는 강렬했던 것들을 되새긴다. 그리고 종합하면서 이 영화를 해석하기 시작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심오하게 해석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황당하게 느끼기도 했다. 아무리봐도 단순한 내용인데 말이다. 많은 것들을 영화에서는 대사로 언급하고 있다. 이 말은 그런 대중들을 비판하려는 것보다 모든 영화의 '해석'이라는 존재가 현재는 설득이나 지식적인 과시의 수단이 된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나홍진의 영화들을 열광한다. <추격자>는 내 최고의 영화였고 <황해>도 매우 좋아했다.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들은 예고편이고 사전조사도 보지 않고 보기도 하는데 이 영화 역시 그랬다. 오컬트인지도 모르고 봤다니까. 그래도 사람들이 느끼는 소재와 스토리상의 내용의 찝찝한 감정은 이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주는 분위기가 익숙해야하는건 당연할 수도 있다. <추격자>, <황해>도 사실 내용 전반이 편안한 상태로 마주할 수는 없다. 작품들에는 늘 피가 흥건하고, 욕설이 난무하며 때로는 알 수 없는 편집으로 해석이 필요한 것들도 있다. <황해>만 해도 그렇다. 장면이 말해주긴하는데,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해한 것이 맞는지 모른채로 영화를 끝까지 지켜보게된다. 그나마 개인적으로 <추격자>는 명확했는데 이 영화는 더 찜찜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그의 영화 중에서 이 작품을 접하는게 처음일 수도 있고.

 하지만 영화는 내내 무거운 분위기로 이어지지 않는다. 중간 중간에 욕설을 하기도 하고 익살스러게 넘어지거는 부분은 좀 아재스럽기는하지만 보는 내내 피곤하게 만들지는 않아 좋았다. 좀비가 등장하여 남성 넷이 소스라치며 싸우는 장면도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좋았다. 요즘 영화는 총으로 쏘거나 단지 뛰어다니는 좀비에게 추격당하며 정신없이 흔들어대는 카메라가 식상할 정도여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추격자>와 <황해>처럼 이 영화 역시 스토리텔링은 흡입력이 있고, (물론 소리처리가 마음에 들었지만) 대사는 적절한 분위기를 만든다. 

 내게는 이 영화가 그렇게 어렵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 기존에 다양한 오컬트 영화를 접했기도했고 최근에는 다시 헐리웃에도 <컨저링>, <인시디어스> 같은 프랜차이즈 덕분에 오컬트가 대중앞에서 익숙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단지 이 영화가 '한국적'인 오컬트의 성질이 매우 잘 잡혀있기 때문에 내게는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특수성이 또렷하고 더 강렬하게 집중되었던 것 같다. 더 강하게 표현하자면 매우 고약한 내용일 수도 있다. 내가 <악마의 씨>를 봤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배드 엔딩을 매우 싫어하지만 매력적으로 여겨한다. 늘 슈퍼 히어로 영화는 열광해도 당연한 작품인 시대에 이런 내용은 논쟁의 대상이 된다. 사실 한 영화에 대한 논쟁이라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크게 의미가 있지만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영화 속에 외지인과 일광이 각자 살을 날리는 장면들을 교차편집하여 관객을 혼란스러게 했다는 것이 '의도된' 장치라고 하는 것처럼 영화 속의 언쟁의 대상들은 그 언급되는 시점에서부터 별 것이 아닌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영화의 작품성과 연동이 되어버린다. 아무튼 영화가 재미있기에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인데 이런 현상들은 크리스토퍼 놀란 작품이 나올 때마다 그랬던 것 같다. 감독은 그리 무겁게 신경쓰지 않았던 것인데 팬들이 해석을 하면서 굉장한 작품으로 되어리는거다. 과찬이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아무튼 영화는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나 나홍진의 영화는 다시 봐도 재미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구조가 단순한 것이지만 전체적으로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는 것이다. 외지인의 실체나, 무명의 정체 그리고 신부로써 받아들이는 '외지인'의 존재 자체와 다양한 소품 (생선이라든지) 들을 생각해보면 여간내기는 아니다. 시골 한 곳에서 어둠을 맞닥들이는 이상한 사건을 한국의 토속적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은 익숙하지만 이상해보이는 시대다. 가끔 이런 소재를 이용한 한국 영화들이 등장하기는 하는데, 다들 괴작이 되어버려서 망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 영화는 잘 만든 것이 맞다. 스크린이 꺼진 뒤에도 지속되는 이 오컬트 장르가 주는 불온한 기운을 성공적으로 전달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