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데모닉 (Demonic, 2015)

 이제 슬슬'귀신들린 집'이나 '파운드 푸티지'가 지긋지긋해질 때가 됐다. 전반적으로 이런 소재들은 기본적으로 오컬트의 흥미를 기반으로 둔다. <데모닉> 역시 이 서브 장르의 기능을 충실하고 적절히 소화해내는데 노력하고자 한다. 공포 영화의 역사에서 소재의 진화와 응용은 흥미로운 대상이다. 한번 잘 만들어진 작품이 탄생하면 그 것의 아류작이 등장하고, 퀄리티는 지속적으로 떨어지는데 영화사들은 관객 확보를 위해 일단 만들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 물론 관객들은 그런 단순한 반복에 대해 그리 관대할 수는 없다. 어느 정도 약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새로운 소재를 찾기 시작한다. 상업 영화 역사는 늘 그랬던 것 같다.

 사람들은 갈수록 롤러코스터처럼 정신없고 짜릿한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느낀 적이 있다. 이 영화 역시 짜릿한 자극을 주는 것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국내에서의 공포 영화 장르는 쉽게 자리를 잡지 못한다. 당연한 소리지만 동시대에 잘 만든 공포 영화를 찾기란 쉽지 않다. 특히 국내 시장에서 공포 영화 산업은 거의 심각할 정도로 침체기인데 극장은 거의 깜짝 히트를 치는 공포 영화에 의존을 하고 있다. 한 번 터지기 시작하면 비슷한 범작 내지 망작을 가져오는 부작용도 있다. 

 당시 <컨저링>은 폭발적으로 주목받았다. 대중에게 '공포'는 매우 가까히 있고 민감한 소재이다. 그만큼 흥분을 잘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은 '가짜 공포'를 구분할 줄 못한다는 점이다. 다만 <컨저링>이 가짜 공포만으로 무장됐다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환상적이었다. 제임스 완은 관객들을 어떻게 놀래키고 불안하게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다시 돌아가자면, <컨저링>이라는 영화 이후에 비슷한 공포 영화들의 홍보 방식에는 무조건 <컨저링>이 언급된다는 문제점이 발생하기도 했다.  할리우드에서 워너가 그래도 많은 공포 영화들을 제작하긴 하지만 이 장르를 수입하고 대중에게 선보이기 위해서는 <컨저링>을 언급한다. 그리고 관객들은 전혀 관련 없는 작품을 접하거나, 엉망진창인 결과물을 보게된다. 대중들은 이 '가짜 공포'를 경험하면서 무서움의 기준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일단 보는 과정의 '어두움'이 있으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매우 긴장을 한다. 여기서 누가 배우의 손을 확 잡거나 깜짝 놀래는 장면이 있으면 사람들은 그 자체로 깜짝 놀라게 된다. 

이렇게 못 만든 공포 영화들을 보면 '가짜 공포'가 판을 치는데 어찌 그렇게 사람들은 이것에 혼동해 호들갑을 떠는지 모르겠다. 물론 재미있고 없고의 기준과는 조금 다르다. 아무튼 이게 뭐가 중요하냐고 어차피 놀라기 전까지는 무서운 똑같지 않느냐고 물으신다면 <팔로우>를 추천하고 싶다.


 이 영화 속의 남자 주인공은 어떤 '환영'이 보이는 것을 여자친구에게 고백한다. 여자친구는 어릴 적부터 '유령 찾기'라는 것을 즐겼던 친구들을 모아 남자 주인공의 고민을 해결해주기로 한다. 그녀의 '모임' 인원 중에는 전 남자친구도 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이들은 '환영'의 단서가 될만한 장소를 향하게 되는데 그 장소는 과거에 집단 살인이 벌여지고 현재는 아무도 살지 않은 집이다. 주인공들은 대담하게 이 집에서 단서를 찾기로 하고 점점 기이한 사건을 겪게 된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어떤 참극의 종료된 상태에서 한 형사의 수사로 경위를 밝혀나가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사건이 단순한 흐름이 아닌 사고가 발생하는 과정을 따로 비디오로 복원되는 과정과 생존자의 혼란스러운 진술과 함께 교차적인 구성으로 펼쳐진다. 이 영화가 이렇게 진행되는 것이 흥미롭지만 관객들은 진실과 결말을 예측할만한 단서들이 충분히 나오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 결말이 확실해지기 전까지 영화를 흥미롭게 즐길 수는 있을 것이다.


 '악마'나 '유령'과 관련된 소재, 그리고 파운드 푸티지와 귀신들린 집이라는 소재는 인식하기도 쉽고 익숙하며 시각적인 충격도 주기엔 매우 쉬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창 스티븐 킹 소설의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은 오직 심리적 충격을 주고자 했다. 이상하게도 요즘에는 이 스타일이 관객에게는 도무지 선호할만한 가치가 되지 않는 것 같다. 관객을 괴롭히는 심리적 장치는 이제 현실적인 스릴러 영화에만 한정돼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유행으로 불리울만한 소재는 더 이상 활용되지 않는다. 유행이 끝난 것이다. 다음 시대에는  어떤 소재로 유행이 될지 기대는 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유행의 작품들 중에 망할 영화들이 얼마나 많이 나올지 걱정도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