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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아 (Noah, 2014)

 이전에 래리 찰스의 <Religulous>를 접한 적이 있었다. 제목을 보듯이 'Ridiculous'와 Religion'을 조합한 제목으로 '터무니 없는 종교'쯤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국내에서는 정식발매한 작품이 아니었지만 국내 포탈에서는 <신은 없다>라는 제목으로 통하고 있었다. 제목에서 알듯이 종교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였다. 래리 찰스는 <보랏>, <브루노> 그리고 <독재자>를 감독한 똘끼 충만한 감독이었고, 이 영화가 어떤 내용으로 꾸며졌을지 상상이 됐다. 어쨌든 나는 그 영화를 접하긴했지만 다 보진 않았다. 애초에 종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차지 하는지도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그들을 조롱하는 이들마저 나는 관심을 가족 싶지 않았다. 이처럼 사람이 정말 관심이 없는 것에는 아무리 설명하고 설득하려고 해도 먹히지 않는 예도 많은데, 더군다나 내게 있어 '종교'는 더욱 그러했다. 지금도 그렇고.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종교인들의 과도한 행위가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기 때문에 더 큰 반향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가 고민해본다. 이 이야기는 <노아>의 반응을 두고 시작하는 말이다.


 <노아>라는 영화는 어떤 의미에서 상당히 대단한 영화이다. 이 역시 내 기준에서의 해석이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영화'라는 문화적 대상 속에는 다양한 장르가 존재하고 그 속 '블록버스터'라는 고유한 장르가 있다. 블록버스터의 거대한 스케일은 대중을 쉽게 사로 잡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충족한다. 그리고 하나의 블록버스터 영화는 여러 매체를 통해 더욱 쉽게 다가갈 수 있게된다. 직업, 나이, 성격 등 모든 것을 고려해볼 필요 없이 수 많은 사람들은 블록버스터를 보게된다. 그리고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이 점들을 이용한 듯 아주 영리하게 <노아>를 만들었다. 창세기의 '노아의 방주' 내용이 있다고 한다. 

그 내용을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직접 각색한 그래픽 노블을 영화화한 것이다. 사실 이 영화 속의 '노아의 방주'는 그저 몇 가지의 주제와 준비물만 가지고 만든 하나의 판타지라는 결론을 짓고 말았다. 애초에 이 영화는 성경과 유사성이 많이 없는 것이다. 정말로 영화가 성경같았으면 재미가 없었을지도. 물론 나는 아예 성경을 읽어 보지 않은 상태로 영화를 접했는데 보는 동안 '와 이게 진짜 성경을 바탕으로 만들어진건가, 대단한 판타지다'했을 정도. 사실은 그 반대였다. 영화 속에는 진화론과 우주론을 모두 받아들이고 심지어 골렘 비슷한 '감시자'가 나온다. 그런데 이렇게 보고 나서도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작품성이 다르다는 것이다. 일단 '재미없다'는 것은 집어치우고 이 내용이 어떻게 흥미롭게 풀려있는가부터 의견이 가지각색이었다. 심지어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노아'가 끝내 극단적인 인물로 변화하는데도 사람들은 이것 자체를 그냥 성경의 내용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만큼 사람들은 때로 '어떤' 주체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을 뿐더러 무감각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관심이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큰 반향을 일으켰을 수도 있겠지만 나같은 무지함과도 별반 다를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내가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노아의 방주'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크게 관심이 가거나 하는 그런 내용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매우 흥미롭다. 위에 말했듯이, <노아>에서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보여줄 것을 다 보여주고 이후의 다양한 가능성을 제기한다.  심지어 <노아>의 스케일은 태초의 지구를 한것으로 굉장히 크고 거대한 자연재해와 방대한 세계, 그리고 몇 가지 세상의 시작과 현재, 끝의 시각적 체험은 굉장했다. 그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던 것 같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다 보여주었는데도 불평불만을 가지는 것은 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 덕분에 이 영화의 평가가 크게 높진 않아서 아쉬울 따름이다.


 어떤 영화들 속에는 '종교적 깨우침'을 알리려는 의도가 다분한 작품들이 있었던 것 같다. 영화라는 것은 참 생각하기 나름인 것이, 어떤 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그것이 영화 이상이 될 것이지만, 그들이 부정하는 건덕지가 있다면 '영화는 영화일 뿐'하며 맘 편하게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사실, 특별히 이런 예를 단지 '영화'에 한정시킨다는 것도 무리일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특정한 대상에 대한 극렬한 칭찬이 보기 싫어 새로운 시점의 비판이 발생하곤 한다. 새로운 비판은 중요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 감정적인 상태로 대하다보니 이상한 비판이 발생하고 그것을 존중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한다. 결국 어쨌든 야양쪽 다 '터무니없는'것은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요즘 영화들를 보며 드는 생각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이는 어떤 영화들이 있다는 것인데, 이는 몰라도 상관은 크게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처럼 알고 있는게 많을 수록 더 재미있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나도 완벽하게 알고 있지 않는 것을 알고 있다. 잘못 알고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요점은 '더 많이 알수록', '내가 알았던 것이 틀렸을 때'내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것이지.

 물론 이는 영화의 작품성과 흥행수준은 이것과 관계가 밀접하지는 않아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영화가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재미있어야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