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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슬리핑 뷰티 (Sleeping Beauty, 2011)

 루시는 공부하는 시간 외엔 잡다한 일을 하며 돈을 벌는 대학생이다. 그녀에게는 학생이라는 직업이 있지만 결국 물질적인 족쇄에 묶여 공부하는 것보다 돈 버는 것이 뒷전이다. 돈 없는 세대가 살기 위해 모든 시간을 투자해야한다는 강제적 의무가 있지만, 그녀의 사생활은 또래와는 조금 달리 독특하다. 루시는 식당에서 돈을 벌기도 하고, 어느 회사에서 서류 정리를 하기도 하며, '남자친구' (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그런 것 같은)가 있지만 다른 남자와 잠을 자주기도 하고, 때로는 마약을 하기도 하며 난잡하지만 규칙적인 것이 있는 생활의 연속이다. 영화는 어떤 음악도 없이 내내 그녀의 행동을 관찰하도록 도와주지만 그 반복된 일상이 익숙해질만하지 않기도 하고 그녀의 표정에는 별로 행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독특한 일'을 하던 그녀에게 어느 날 더욱 특이한 일자리를 제안받는데 바로 홀로 잠을 자주는 것이다. 잠에 푹 빠져 있는 동안,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일어나면 수당을 받고 집에 가는 것이다. 대우도 완벽하다. 그녀가 '자는 동안 절대 삽입은 없다.'고 강조한다. 그녀는 상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자궁은 '성스러운 사원'이라고 말한다. 여전히 루시는 아니라고 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잠자는 미녀≫를 기반으로 리메이크된 <슬리핑 뷰티>는 2011년에 개봉한 여성 감독 줄리아 리의 작품이다. 줄리아 리는 호주 출신의 소설가이자 각색가로 활동하였으며 <슬리핑 뷰티>는 그녀의 첫 데뷔작이다. 전라 연기를 한 에밀리 브라우닝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매우 건조한 탓에, 마치 앞에 거대한 유리가 있는 것처럼 거리감을 주게 만들었다.

 

 소설에 기반된 영화인 탓에 '루시'는 대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이질감을 보여준다. 젊은 세대는 모두 가난을 겪지만 시간적 여유가 즐거움을 찾아주기도 하고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생활 면에서 다르다. 어디선가는 있을지도 장면일지도 모르지만 이는 위험한 짐작이다. 이처럼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이 이야기를 공감할 수 없다는 점인데 단순히 소설과도 같은 맥락으로 의지하자면 이 영화는 생각보다 담담하다. 

 

루시는 죽음을 얼마 남기지 않는 노인들의 마지막 잠을 함께 해주는 것을 체험한다. 자신은 모르지만 관객은 안다. 관객은 루시와 마지막을 함께한 노인들이 어떻게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는지 지켜본다. 영화 중간에는 그녀의 남자친구도 죽게된다. 하지만 그녀는 죽음에 무덤덤하다. 죽음에 대해 무관심하지만 죽어도 별 아무렇지 않아 한다. 어찌보면 그녀는 악독하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의 아는 남자도 그녀를 그렇게 표현한다. 이에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아한다.

 

 <슬리핑 뷰티>는 루시 그녀를 말한다. 우리가 어떤 동화를 보면, 제목이 가리키는 인물은 절대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단 한 명이며, 결국 주인공은 사랑을 하고 목표를 성취하며 살아 남는다는 것이다.반면 이 영화 속에서의 '잠자는 미녀'는 마지막에 살아 남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녀는 숨만 쉬고 있지만 그것은 충격을 가져온다. 그리고 영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문을 닫는다.

 

 나는 이 영화를 나쁘지 않게 생각한다. 나는 가끔 소설과도 같은 잠잠한 영화를 찾는다. 작품의 스틸, 줄거리, 포스터는 영화의 분위기가 어떨 것인지 대변해준다. 아쉽게도, 이 영화는 애초에 기대를 주지 않은 망정에 부담스럽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몇몇 장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어렵지 않게 설명해준다. 단지 그 뿐이다. 이 이야기가 끝나면 우리는 소설을 한편 읽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