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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영화

현기증 (Vertigo, 1958)

 어떤 면에서 서스펜스와 스릴러를 보자면 나는 늘어지는 영화를 정말 싫어한다. 어떤 명작을 감상해야할 때는 이런 점을 고쳐야하겠지만 이 고질 병을 쉽게 고치질 못하겠다. 확실히 요즘 스릴러는 유행처럼 반짝이는 구성을 무기로하기 때문에 고전 스릴러의 백미인 늘어지는 재미를 이해하지 못하는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를 봄으로서 나는 흑백 필름을 컬러로 복원한 것에 대해 참 이색적이라는 걸 느낀다. 심리 전달을 그 누구보다 뛰어나게 전달하는 히치콕은 특히 이 영화 속의 주인공이 겪는 현기증을 색조있게 볼 수 있는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다. 특히 사람의 눈을 통해 보여주는 소용돌이가 제목을 대표하며 예술적으로 표현한 것은 주인공이 얼마나 자신이 가진 고소공포증에 얼마나 민감함을 표현하기도한다.
 내가 그의 관객이라고 해서 건방지게 관객을 대표하려는 것은 옳지 않지만 히치콕의 작품은 느낌의 소통에서 발휘하는 능력이 두드러지는 것을 느낀다. 현기증은 그에게 가장 심한 문제고, 트라우마 역시 그를 괴롭히는 존재로서 사람을 지긋지긋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현기증이 가장 중요한 소재를 가지지만 나는 히치콕의 기막힌 영상 기법과 주인공이 겪는 정신적 외상 덕분에 가장 중요한 한가지를 간과해버렸다. 결국 히치콕한테 보기 좋게 당해버린 것이다. 나는 영화는 대화보다는 영상으로 사람을 최면시키는 것을 믿는다. 의지하면 분명히 속는다. 그리고 영화가 가진 그 매력에 빠진다.
 어떨 때는 흑백 영화를 그 옛날 모습 자체로 즐기는게 참 맛일 때도 있지만 <현기증>은 컬러로 보면 두 가지 기분이 든다. 대화는 지겹고, 긴장은 좀 덜 하다. 그러나 사내가 현기증을 겪으며 정신이 마비되는 장면이 발휘하는 압도적인 기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뭐, 막상 시간이 흘러서야 이 영화를 보면 피곤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적어도 단언하건데, 영상 기법은 정말 압도적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