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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크래쉬 (Crash, 2006)

  현대 사회 속 사람들의 습관적인 인종 차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드라마 영화인 <크래쉬>는 다국민적 세계의 불편한 진실을 경고하고 있다. 영화의 제목은 작은 사고이건, 큰 사고이건 서로 상충하기 시작하면 그 충돌은 불꽃처럼 점점 커진다는 현실에서 그 의미를 두고 있다. 이 영화는 실제로 보는 과정에서 인간 누구나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점점 상실해가는 인심과 윤리적인 양심을 보여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충돌은 관객마저 화를 내게 만들만한 사건의 연쇄성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한 가지 이야기가 아닌,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 연관성과 더불어 결합하며 끝을 향하려고 한다. 어쩌면 폴 해기스는 관객까지 이 현실에 대해 점점 외면을 하고자 하며 피해 의식을 가진 모든 자들에게 진실적인 교훈을 말하고자 할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진행 될 때 조차도 중간의 1분 동안 스쳐 지나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거침 없이 해준다. 그러나 이 모두의 이야기는 사실 좋지는 않은 방향으로 꾸며지고 있으며 인물들은 이 불편한 갈등을 분노로써 해결할 것인지 아니면 이해하고 도와줘야 할 것인지 고민을 한다.
  크래쉬는 감상 하고 있는 동안 관객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라면 화가 날 수도 있겠지만 막상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안타까움이 느껴지는데 그 안타까움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는 점이다. 사실은, 이 이야기가 인종간의 불신이라고 하지만 그 것은 서로의 이기심에서 오는 것이었다. 후에는 서로를 감싸주면서, 이해하고 노력을 하면서 화면이 어두워지지만 그 모습은 영화 내의 단면적인 모습일 뿐, 세상 속에 사는 모든 이들과 모습이 똑같을 뿐이다.
 크래쉬는 제목 그대로 한 사건 속에서 서로의 충돌이 마치 도미노처럼 연쇄해가면서 그 비극을 전해준다. 그리고 그 충격이 부메랑과 같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에게 돌아와 심장을 굳게 만든다. 그러므로써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서로의 입장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제시된다.  쓰라린 장면에서 내가 본 것은 사실적 현실의 일부와도 같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남들이 자신을 도와주겠노라 하면, 드라마도 아닌데 그들이 우리를 배신할 것 같은 불안감과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행동의 혐오감으로 인해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고집부린다. 폴 해기스는 당신이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할것이냐고 말해준다.
  폴 해기스의 두 번째 감독작인 <크래쉬>는 짧은 시간동안 일어나는 커다란 사건과 함께 변화하는 사람들간의 감정적인 구조와 행동으로써 관용과 희망을 말하고자하는 휴먼드라마다. 허나 이 극단적이고, 심정을 뒤엉키게 만드는 드라마는 그 무엇보다도 다국민족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쉽게 해소되지 않는 간단한 문제의 현실을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