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는 전쟁의 시대에서 우여곡절에 끝에 살아 남은 어느 피아니스트의 이야기이다. 보여주는 전체적인 줄거리는 TV프로그램 서프라이즈에나 나올 법하다.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지만 어디까지나 로만 폴란스키는 전체 속의 부주제까지만에서라도 참혹한 살상 장면을 시대적 배경으로만 이용하려 했던 것 같다. 인간에 대한 비판 의식은 배후를 통해서라도 담겨 있지만 이는 영화의 메시지를 이야기한다고 하기에는 희박한 수준이다. 폴란드 유대인 피아니스트인 블라디슬라브 스필만은 독일군의 탄압으로 피아노를 치지 못하고 육체적 노동과 함께 가족과 헤어지고 주변에 알고 지내던 친구, 지인들 역시 소식이 끊기게 된다. 자신을 유일하게 알고 지내던 친구는 경찰 신분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지만 어느 덧 이조차 한계가 되고 만다. 이것이 전쟁 폐허 속 여정의 시작이 된다. 운이 좋게도 그는 살기 위해 어렵게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알게 되며 숨어지내지만 마을의 상황이 악화되가며 자신을 도와준 사람도 떠나며, 그는 안전한지도 어떨지 모르는 확실지 못한 매 순간 속에서 몸을 숨기게 된다.
중간에는 레지스탕스의 테러 장면과 넘기 힘든 거대한 장벽을 만들어 유대인 전용 다리를 만들거나 유대인은 인도로 못가게 하는 군인들의 모습 등 사실적이고 생생한 장면들이 묘사되며 특히 폭발 장면같은 부분은 카메라가 주인공 곁을 벗어나지 않은 채로 의지하여 상당한 시각적 거리를 유지하게끔 한다. 로만 폴란스키는 그토록 영화의 전개를 주인공의 시선과 행동에서만 한정하려 노력한다. 이는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관객들이 스스로 읽게끔 해주며, 역시 이것은 어쨌던 간에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말하려는 사상에는 전혀 언급을 하려하지 않는다. 사실 전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 대해서는 이 영화의 전반적인 주제라고 말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배경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매우 인상깊고 방대한 소재지만, 많이 인식되는 만큼 이 영화는 유치하게 이끌리지 않는다. 물론 비윤리적이고 참혹한 인간의 말살 행위를 보면 어이 없고 대단할 지경이지만 이상하게도 내게 감정적인 이유를 스스로 설명해주고자 하지는 않았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독일 장교와 마주친 스필만. 사람들은 어쩌면 그의 대답이 목숨을 결정 짓는다는 당연하고도 유치한 걱정과 긴장을 겪는다. 스필만이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바뀌는 듯 했다. 어쩌면, 우리도 그 옆에 서있는 듯이 조용하게 멀쩡한 피아노 연주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같이 울 것같다는 감동 때문에.